1. 서론
우리는 진료실에서 남성들의 발기부전, 사정장애 및 성욕 저하와 같은 성기능 장애에 대해 비뇨의학과 전문의로서 많은 환자들을 대하고 효과적인 치료법 제공을 위해 고민을 한다.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서는 여성 성기능장애도 반드시 해결해야 되는 부분이지만, 현실적으로 비뇨의학과를 통해 진료를 받는 여성은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다. 비뇨의학과 전문의는 성기능장애를 치료하는 전문가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남성 성기능장애에 국한하여 환자들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발기부전이나 사정장애 등을 치료하다 보면 환자들이 치료를 통해 성생활은 가능하지만, 본인도 그렇고 파트너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것이 기능적인 불만족이라면 약 용량을 증대하거나 다른 치료법을 통해 개선시킬 수 있겠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 진료실이라는 공간적 제약과 그마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진료 환경 하에서 온전히 환자의 입장에서 성생활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해 고민하고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비뇨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 남성 성기능의 기능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환자를 대하다 보면, 실제 환자가 원하는 성적 즐거움과 만족감의 가치를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의 성적 즐거움과 만족감에 대해 어떤 측면들을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2. 본론
세계성건강협회(World Association for Sexual Health, WASH)에서는 성적 즐거움이 성 권리, 성 건강, 그리고 성 웰빙의 근간이 된다는 인식 하에 성적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2].
1. 생각, 꿈, 자기성애를 포함하여 단독 또는 공유된 성적 경험에서 파생되는 신체적 및/또는 심리적 만족과 즐거움이다.
2. 자기 결정, 동의, 안전, 사생활 보호, 자신감, 성관계를 의사소통하고 협상하는 능력은 성적 건강과 웰빙에 기여하는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3. 성적 즐거움은 성적 권리, 특히 평등과 비차별에 대한 권리, 자율성과 신체적 완전성,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맥락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4. 인간의 성적 즐거움의 경험은 다양하며 성적 권리는 쾌락이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경험이며 다른 사람의 인권과 복지를 침해하여 얻는 것이 아님을 보장한다.
그리고 WASH에서는 성적 즐거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표 1], 모든 국가의 정부, 국제 정부 및 비정부 기구, 학술 기관, 보건 및 교육 당국, 언론, 민간 부문 활동가, 특히 세계 성 건강 협회의 모든 회원 단체에 다음과 같은 조치를 촉구하였다 [1].
1. 자기 결정, 차별 금지, 사생활 보호, 신체의 온전함, 평등을 포함하여 인권으로서의 성적 권리의 원칙에 근거하여 성적 건강과 복지의 근본적인 부분으로서 법과 정책에서 성적 쾌락을 증진해야 한다.
2. 정보에 입각하고, 자기 결정적이며, 존중하며, 안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성교육이 전 생애에 걸쳐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과 요구에 맞는 포용적이고 증거에 입각한 권리 기반 방식으로 성적 쾌락을 다루도록 보장해야 한다.
3. 성적 쾌락이 성 건강 관리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이며 성 건강 서비스가 접근 가능하고 저렴하며 수용 가능하고 낙인, 차별 및 기소가 없음을 보장해야 한다.
4. 개인과 공중보건의 성적 쾌락의 역할을 다루기 위한 권리 기반 자금 지원 자원, 연구 방법론 및 지식 보급을 포함하여 웰빙의 일부로서 성적 쾌락의 이점에 대한 권리 기반의 증거 정보 지식 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5.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일관되고 증거에 입각한 정책 및 관행, 대인 관계 행동 및 집단 행동에 의해 뒷받침되는 성적 쾌락 경험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한 세계적, 국가적, 지역 사회, 대인 관계 및 개인의 약속을 재확인해야 한다.
표 1.
세계성건강협회(World Association for Sexual Health)의 성적 즐거움에 대한 선언문
WASH에서 이야기하는 성적 즐거움에 대한 설명이나 선언문을 보면, 성적 즐거움이란 결국 성적 정의(sexual justice), 성 건강(sexual health), 성적 웰빙(sexual wellbeing)의 요소들과 공통적인 분모를 공유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개인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대인 관계에서 고려되는 가치일 수 있다 [3]. 말 그대로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만족감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인생을 통해 계속 지속될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4]. 개인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접촉이나 느낌, 성적 흥분, 오르가즘과 관련된 감각적인 측면이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될 것이고, 성적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파트너에게 성적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들이 모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5]. 대인관계 측면에서는 성적으로 즐거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 파트너의 성적 활동성이나 능력, 창의성이 중요한 요소들이 될 것이고, 감정적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친밀감을 유지하는 정서적인 연결과 친밀감이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5]. 그 밖에도 성행위 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성생활의 범위나 강도, 빈도, 지속 시간 등이 성적 즐거움과 만족감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5]. 성적 즐거움을 추구함에 있어 남/여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성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 측면에서는 성별 간 유사성이 있고, 성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측면에서는 성별 간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또한, 성적 즐거움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 결정,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및, 성적 관계를 의사소통하고 협상하는 능력들이다 [7].
성적 즐거움이 중요한 이유들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우선 성행위 자체가 건강, 수명, 면역력, 통증 관리, 자존감 향상 및 스트레스 감소 등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러 연구 결과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적 즐거움이 개인, 커플, 가족 및 지역 사회의 건강과 웰빙에 기여할 수 있는 관계 자체의 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전반적인 건강을 모두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8]. 성적 즐거움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섹스도 기능적인 측면 보다는 성적 즐거움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정하게 공유되는 성적으로 즐거운 활동’으로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적 즐거움을 임상 진료 현장에서 점검, 확인하고 되찾아 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Jack S. Annon 등이 1976년에 주창한 PLISST model을 진료 현장에 도입해 볼 수 있다 [9]. PLISSIT model은 Permission, Limited Information, Specific Suggestions, Intensive Therapy의 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으로 제일 처음 언급된 ‘Permission’은 말 그대로 의사가 성건강 혹은 성적 즐거움에 대해 환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야에 대해 충분히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에서 시작한다. 성의학자는 전문적인 소양을 쌓고 끊임없이 교육 받아야 하며, 본인이 전문성을 가지고 경험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만 치료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본인의 전문성과 자격에 대해 분명히 고지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실제 상담이 진행되더라도 환자에게 내가 당신의 성적 활동에 대해 묻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확실히 확인을 하고, 괜찮다는 답변을 듣고 조심스럽게 한 단계씩 진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자기 결정, 동의, 안전, 프라이버시, 자신감 및 성적 관계를 의사소통하고 협상하는 능력들과 같이 성적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들을 차분히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으로 ‘Limited Information’ 측면에서는 성적 즐거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들(자가 평가 설문지 등)을 이용하면 더 훌륭한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환자들의 염려에 대해 성기능과 성적 즐거움에 관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경험이 바탕이 된 의학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야 하며, 온라인 교육이나 인터넷 웹사이트, 팜플렛 등을 통해 의학적 정보를 소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성적 즐거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강 상태나 약물 등에 대한 상담과 확인 과정이 필요하며, 성생활 시에 성적 즐거움을 증대시킬 수 있는 표현법 들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들도 중요하다 [10]. ‘Specific Suggestions’과 관련해서는 만성질환이나 환자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약물들 중 성기능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조절이 필요하고, 성기능 장애를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약물 치료를 제공해야 하며, ‘Sensate Focus Exercise’와 같이 서로 간의 친밀도와 유대감을 강화시켜 성적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교육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11]. 마지막으로 ‘Intensive Therapy’ 측면에서 내가 아닌 다른 전문가들에게 다음 단계 치료나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의뢰를 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주로 성적 학대의 경험이 있거나 성적 즐거움과 관련된 여러 평가 설문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나타낸 경우, 의사와 원활하게 대화가 되지 않는 환자의 경우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정작 이런 환자들을 psychotherapy를 위해 의뢰하는 경우에 전문가들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다는 문제점이 존재하고, 성적 즐거움과 관련된 임상적 특성들을 조합하고 표현하는 표준화된 모델이 부재하여 치료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12].
3. 결론
성행위 자체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성적 즐거움이 개인, 가족, 사회의 건강과 웰빙 및 행복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적 즐거움의 가치를 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성생활을 통한 즐거움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성 권리, 성 동등성, 자기결정권, 자율성, 동의, 성교육 등과 같은 부분들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야 생각해야 하며, 젠더 이슈, 성 소수자, 장애인의 성 등을 포괄하는 사회문화적 이슈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임상 현장에서 환자의 성적 즐거움이란 측면에 접근할 때, PLISSIT model에 입각하여 전문성을 갖고 접근해야 하며, 표준화되고 체계적인 과정을 구축하여 환자 성적 활동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해야 한다. 앞으로 비뇨의학과 전문의로서 진료 현장에서 성기능장애에 대한 진료를 할 때, 환자의 성기능 측면뿐만 아니라 성생활을 통한 즐거움에도 관심을 가지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